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 나오토 (문단 편집) == 평가 == 세습 정치인이 아닌데다 일관되게 반(反) 자민당의 길을 걸어온[* 1955년 자민당 체제 등장 이후 일본의 총리 가운데 자민당 당적을 가져 본적이 한 번도 없는 인물은 1994~1995년 자민당-일본사회당-신당 사키가케 3당 연립내각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민주당 정권 시절의 간 나오토 본인, 간 나오토의 후임 총리였던 [[노다 요시히코]] 셋 뿐이다.] 군소야당 [[사회민주연합]] 출신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성장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라 자민당의 보수 세습 정치에 질린 시민들의 기대가 컸으나, 야당 정치인 시절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정치력으로 실망을 주었고 설상가상으로 들이닥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천재(天災)]]와 [[도쿄전력|막장기업]]이 야기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인재(人災)]]를 신경써 수습하고도 욕 먹는 불행한 인물이다.[* 이에 맞먹는 불행을 겪은 총리가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으로 평생을 고생했다.] [[복지]] 확대 이전에 소비세 인상을 통한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라는 간 내각의 정책방향 자체는 [[오자와 이치로]]의 '일단 닥치고 복지 확대'보다 현실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금 인상이라면 본능적으로 회피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무시하고 '''일본 참의원 선거 직전'''에 이를 주장함으로서 참패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프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부분. 그리고 털렸다는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22회 참원선]]에서도 득표율 자체는 비례,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자민당보다 앞섰다.'''[* 비례 민주 31.56%vs자민 24.07%. 지역구 민주 38.97%vs자민 33.38%.] 민심은 아직까지도 민주당이 실망스러워도 자민당을 대안세력으로 보지 않은 셈인데, 선거전략을 개떡같이 짜서(...)[* 대표적인 선거전략 실패로는 2인구, 3인구에서 후보를 2명 내보내는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자민당은 이와 반대로 당 지지율이 낮음을 인지하고 확실하게 당선시키기 위해 후보 한 명만을 내보냈는데, 민주당은 표가 분산되어서 후보들의 득표율 합은 자민당보다 높지만 [[모두의 당]], [[공명당]]등의 중견정당의 약진으로 2인구, 3인구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하고, 반대로 표가 통일된 자민당은 한 석은 건지는 그런 구도가 전국에서 연출됐다.] 자민당에게 반등의 기회를 준 셈이다. 이 때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만 하지 않았어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간 총리 개인으로서도 뼈아픈 부분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람은 좋은데 정치능력이 떨어진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 '''"국민 절반이 살 수 없게 되는 사고라면 100년에 한번뿐일지라도 그런 위험부담은 져서는 안된다!"''' 라는 발언까지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총리는 적어도 4년 정도는 해야 안정적이다'''라는 말을 총리가 되기 전 의원 시절에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대로 4년은 커녕 1년 3개월에 그치면서 또 하나의 단명 내각으로 남고 말았다.[* 그래도 자민당 장기집권 시대를 다시 연 [[아베 신조]]의 후임자 [[스가 요시히데]](1년 1개월)보다는 오래 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 내에서 거의 모든 파벌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선을 노리다가 포기한 사람이기 때문에 간 나오토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래도 역대 전후 내각 총리대신 32명 가운데 19위의 재임기간으로 일본 정치의 현실에서는 아주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래에는 비교적 긴 임기에 색깔있는 총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임기 내의 지지율 하락에 따라 [[하토야마 유키오]]와 함께 가장 많이 까이게 되었다. 당장 [[니코니코 대백과]]에서 간 나오토 항목과 [[아베 신조]] 항목을 비교해봐도 보수층들이 얼마나 간 총리를 혐오하는지 알수 있다. 보수층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대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평가는 최악 자체. 그 뒤 반핵 행보를 이유로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고 있는 일본 내 보수세력들에게 틈틈히 공격당하고 있다. '''헌데 이조차도 임기 중 일어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도호쿠 지역에 일어난 예기치 못한 대지진]]의 여파(및 안일한 후속대책)임을 생각해보면 운이 지지리도 없는 인물이다.''' [[도쿄전력]]이 계속 꾸물거리자 직접 처들어가 지휘하는 등 '''국가 지도자로서 이 이상 악화되지 않게 잘 대처했음에도[[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228170907§ion=05&t1=n|#]] 욕만 먹는 비운의 총리가 되었다.''' 이는 이후 들어선 아베 정권이 [[2018년 7월 일본 호우|2018년 일본 서남부 폭우 사태]]때 [[세월호 7시간|66시간이 흐르고서야 대책본부를 수립했고]] [[제비(2018년 태풍)|25년 만에 일본을 강타한 최악의 태풍]]이 [[오사카부|오사카]]를 강타했는데도 총재선 집회가 열리는 니가타현으로 가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정권에 위기가 없는 것과 비교해보면 대지진과 그 수습의 책임을 다 떠넘긴 거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 집단에서는 '''간 총리가 관련 전공자였기에 그나마 위기감을 느껴 빠르게 대처했지[* 2019년 자민당 아베 내각을 보면 장관들이 [[낙하산 인사|담당 부서와 상관없는 비전공자에, 부서 관련 지식,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안 그랬으면 (연쇄 폭발&유출로 인해) 일본 [[도호쿠]] 뿐만 아니라 [[도쿄]] 부근까지도 [[뉴클리어 아포칼립스]]가 될 수 있었다'''라는 평 역시 존재한다. 만약 [[포기하면 편해|이래나 저래나 욕 먹게 됐으니 다 포기했거나 도쿄전력만 믿고 아무 대처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으면]] 이런 재평가조차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이 양반은 언행불일치를 그간 요상하게 해왔기에 극우가 아니더라도 까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아베 총리는 인터넷으로 유권자와 소통하기 때문에 자격미달"[* 이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자민당과 아베 내각이 방송국, 신문 표현의 자유는 [[손타쿠]] 등으로 침해하면서 인터넷상의 헤이트스피치는 적극적으로 방관하였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본인 블로그에 써놓는 걸로 시작해서, "정치판이 개판이라 은퇴하고 싶다"고 인터뷰까지 해놓고는 선거전에 제일 먼저 뛰어든다던지 자기는 블로그에서 타 정당 낙선운동[* 일본은 원칙적으로 인터넷에서의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단지 2013년 5월부터 한정적으로 제한이 풀리긴했지만, 2013년 7월 현재도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이 방송에서 퇴출당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을 벌였으면서 아베가 블로그에 본인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걸로 정점을 찍은 여러가지 기행 덕분에 신나게 까이고있다. 그러나 간 나오토가 아베를 고소한 이유는 [[http://www.47news.jp/korean/politics_national/2013/07/070432.html|이런 이유]] 때문이니 간 나오토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경과]] 2013년 7월 17일자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